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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전쟁 '에뮤 전쟁'


1932년 호주에서 호주군이 전개한 에뮤 소탕 작전으로,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전쟁으로 손꼽히는 군사작전.

에뮤들을 많이 죽이긴 했지만 효과가 매우 미미한 데다가 여론도 좋지 않아 호주 정부는 패배를 인정하였고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1932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얼마 되지 않은 호주에는 딱히 배운 기술이 없는 퇴역군인 다수가 농부로 삶을 꾸렸다. 문제는 서부 지역의 벌판에 농경지를 넓히기 시작하면서 토착조류 에뮤와의 갈등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농부들이 작은 야생동물을 막기가 울타리를 둘렀지만, 에뮤 무리들은 그런 울타리 따위는 거대한 몸뚱이로 들이받아 가뿐히 부수고 들어와 농경지를 휩쓸었다. 특히나 그해 9월은 기록적인 가뭄이 들었기에 에뮤 군단 또한 먹이 부족에 시달려 농경지에 지속적으로 침입해서 밀밭을 헤집어놓았다. 문제는 에뮤 군단의 수가 2만 마리가 넘는다는 것.

농부들은 거대한 에뮤 군단을 목도하고 처음에는 관공서 전화기에다 불을 내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에뮤의 수는 일개 지방 관공서가 해결할 수준이 아니었다. 1차 대전 참전 경력이 있던 농부들이 기관총은 사람을 잘 잡으니까 에뮤도 잘 잡으리라 생각해서 군 파병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당시 호주 국방장관 조지 피어스(George Pearce 1870-1952)가 대민봉사 겸 훈련으로 루이스 경기관총 2정과 탄약 1만여 발을 지참한 병력을 파병하도록 허가했다. 부대는 1932년 11월 1일부터 11월 9일까지 약 일주일 동안 호주 서부에서 에뮤와 인간 사이에서 벌어진 '대전쟁'의 시작이었다.




요즘에야 새 때문에 전쟁을 선포한다는 게 웃긴 일이지만, 당시에는 가뭄 때문에 식량난도 심각했기에 신문 1면에 에뮤와의 전쟁이 대서특필될 만한 사건이었다. 물론 영연방 문화 특유의 과장하는 습성으로 '에뮤 대전쟁(Great Emu War)'이라는 명칭을 붙였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기관총이 있으니까 큼지막한 새 만 마리 따위야 바람 앞의 깃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에뮤는 워낙 속도가 빨라서 야지에서는 군용 트럭으로도 쫓아가기 힘든 데다가 맷집도 생각보다 튼튼해서 쉽게 죽지 않았기 때문에 군이 오히려 고전했다. 그도 그럴 게 기관총을 사람끼리 전쟁하듯 원거리에서 사격해보니 에뮤는 시속 60km에 달하는 속도로 질주할 수 있기에 쉽게 맞히기 힘들었다. 머리나 다리에 총알을 맞으면 에뮤도 금새 죽긴 하지만 워낙 가늘어서 멀리서 총으로 맞추기도 어려웠다. 또한 기관총 소리에 놀라지도 않았다.

호주군은 방법을 바꾸어 트럭에 루이스 경기관총을 설치한 테크니컬을 만들어. 기동사격으로 섬멸하기로 했다. 당시 기준으로 고급무기였던 루이스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기갑장비를 대동한 호주군은 에뮤 군단을 상대로 무서울 것이 없었다. 아니 없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항상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기 마련. 기세 좋게 루이스 경기관총을 설치한 트럭이 이윽고 출격하자 어떤 용맹한 에뮤 한 마리의 육탄돌격을 정면으로 맞고 망가져버려 최신식 기갑장비는 너무나도 쉽게 무력화되었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 에뮤 군단은 게릴라 작전을 펼치며 호주군을 농락했다. 에뮤 군단이 소규모로 갈라져 곳곳의 농작물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에뮤 무리 중 가장 키가 큰 에뮤가 지휘관 격 개체가 되어 호주군의 진격을 감시하고 경계하기까지 했다. 에뮤 한 무리가 인간에게 공격을 받으면 다른 무리가 다른 곳의 활짝 열린 밀밭을 유린하였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자 호주군은 전의를 잃었다.

호주군은 지원받은 탄약 1만 발을 거의 다 썼으나 후하게 산정해도 몇백 마리, 공식집계로는 12마리밖에 못 잡았다. 당시 동물권 단체 또한 이 전쟁에 지속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었으며 결국 11월 8일 의회가 전쟁의 지속에 대해 난색을 표하였고 다음날인 11월 9일 사실상의 항복을 선언하며 전쟁이 종료되었다. 당시 군 지휘관은 전차보다도 상대하기 힘든 적이라고 심토했다.

사실 말이 전쟁이지, 트럭 1대에 기관총 2정만을 갖춘 한 개 분대의 병사만이 동원된 동물 소탕전에 불과했다. 그것도 대부분의 병사들은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무기를 손질하고 에뮤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역할이었다. 당연하지만 전쟁이 거의 없는 호주군이라도 야생동물 잡겠다고 만 단위의 병력을 투입할 이유는 없어서 소규모만 보내 에뮤를 몰살시키는게 아닌 농경지에서 몰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인간과 다른 병법(?)을 기용하는 에뮤들의 움직임은 역대 인류 역사 상의 군사학으로는 분석이 불가능했고, 따라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에뮤들을 확실하게 파악해야 했기 때문. 다만 엄연히 군대에 기관총까지 투입하고도 적군이 아닌 야생동물 무리 따위를 몰아내지 못했음이 충격적이고, 워낙 에뮤들이 잘 맞서 싸워서 두고두고 회자된다. 정말 호주군이 윤리나 자연과 공존함, 비용 등등의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사단급 병력을 투입해 진짜 전쟁을 치렀다면 에뮤들을 몰살시키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실 제대로 된 전쟁이라 할 만한 건 아래 나오는 토끼와 벌인 전쟁이다.



전쟁(?) 이후 농부들은 아예 에뮤 전용 높은 울타리를 거금을 들여 설치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했지만 에뮤는 그런 인간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뭄이 들 때마다 울타리를 넘어왔고 호주군도 그때마다 불려나와 에뮤 무리와 술래잡기를 반복했는데 이 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 뒤 에뮤가 가축화되어서 잡아서 스테이크로 구워먹기도 한다.

현재는 야생 에뮤들은 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으며 사람과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독특한 외형 때문에 관광자원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호주군은 과거에도 동물과 전쟁을 선포한 적이 있다. 대상은 토끼. 1850년대 영국 식민지 시절 사냥용으로 들여온 유럽산 굴토끼들의 개체수가 무한 증식하여 초지가 황폐화하여 정작 키우는 소와 양이 뜯어먹을 풀이 없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자 시행한 것. 호주에 토끼의 포식자가 없었다고 전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딩고나 뱀, 수리 등이 열심히 토끼를 잡아먹긴 했었다. 다만 이들의 포식량이 토끼의 번식량에 한참 못 미쳤기에 개체수를 줄이지는 못했다.

에뮤는 다 자라면 천적이 거의 없고 수명도 토끼의 몇 배는 되지만, 이상증식을 한 것도 아니었고 토착종이 살던 구역에 인간이 진입하여 충돌이 벌어진 것이라 생태계에 문제가 갈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토끼는 유럽에서 도래한 외래종으로 도입되었을 때부터 호주의 식물생태계를 파괴했다. 호주는 토끼 2백만 마리 아상을 죽이고 많은 수를 포로(?)로 사로잡았지만, 이때 호주에서 생물재해를 일으키던 토끼들은 이미 억 단위로 늘어나고 있었다. 결국 호주는 토끼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당시 호주군 병사들의 증언들이 꽤나 섬짓하다. 토끼 수만 마리가 일시에 자신들을 향해 돌격을 감행하자 볼트액션 소총 리-엔필드로 무장한 호주군들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죽지는 않았지만 몇 마리가 달려들어서 다리를 미친 듯이 물어뜯어댔다고 한다. 어느 중년의 호주군 하사는 회색 털을 가진 굴토끼들을 보고 마치 독일군과 싸우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말하였다. 총으로도 죽이고, 천적인 여우도 풀어보고, 고기와 가죽을 발라내서 아득바득 먹고 쓰다 군량으로도 만들고, 헐값에 수출도 하고, 그마저도 지쳐서 그냥 시체를 파묻고 태우는 등 별별 짓을 하다가 결국 1950년대에 토끼전염병인 점액종증을 도입하여 수를 줄이는 시도까지 했으나, 이마저도 살아남은 소수의 토끼들에 면역이 생기며 무산되었다. 첫해에는 99%의 치사율을 보이며 토끼 절멸을 달성하나 했으나, 토끼는 면역을 갖추고 바이러스는 숙주를 덜 죽이고 그만큼 더 퍼지는 방향으로 상호진화되면서 1년 만에 치사율이 24%까지 추락, 여기에 살아남은 토끼들의 놀라운 번식력으로 개체수가 순식간에 회복되어 바이러스를 이용한 토끼 절멸계획은 실했다.

이후 2020년에는 2019-2020 호주 산불과 맞물려서 낙타와 전쟁을 선포했다. 낙타 또한 토끼와 마찬가지로 사육용으로 들여왔다가 야생으로 퍼졌는데, 호주에는 사실상 낙타의 천적이 없으므로 개체수가 어마어마하게 불어났다. 하지만 이 전쟁 역시 기간은 겨우 닷새였고, 100만 마리 중 1만 마리를 사살하는 정도에 그쳐서 이번에도 사실상 호주의 참패. 사실 낙타도 토끼 못지않게 호주에서 꽤 말썽인 동물인지라, 가망도 없는 전쟁을 반복해야만 하는 호주의 운명이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낙타와 토끼 모두 조상들이 들여온 동물이라는 점도 똑같고, 개체수가 급격하게 불어난 점도 똑같다. 이 정도면 정말 동물과의 전쟁을 반복해야만 하는 호주의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