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철수한 아프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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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철수한 아프간 상황


2023. 5. 17.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 당시 탈레반은 자신들도 2번 놀랐는데 첫 번째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용장으로 알려진 헤라트의 이스마일 칸이 너무 무력하게 항복하여 자신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적은 피해로 일찍 카불을 함락한 것이고 2번째는 아흐마드 마수드가 판지시르에서 반 탈레반 봉기를 일으킨 것이다. 아흐마드 마수드는 탈레반의 이슬람 극단주의에 반대해 온 온건파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로, 아버지의 고향인 판지시르에서 탈레반에 대한 저항을 선포했으며, 이에 판지시르로 코만도 여단을 비롯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잔존병력과 반탈레반 민병대는 물론이고, 그 외 암룰라 살레를 비롯한 마수드의 전우들이 판지시르의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에 합류하였다. 더불어 타지키스탄과 인도가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후퇴했던 압둘 라시드 도스툼이 사병을 이끌고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진입했다.

탈레반은 카불 무혈 점령을 명분 삼아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 하였으나 문제가 생겼다. 탈레반은 이번 카불 점령은 "이슬람권 최초로 미국에 대한 승전", "카불 무혈 점령과 사면령" 등의 문구로 포장하며 이슬람권에 자신들의 입지와 명분을 전달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자신들이 예상보다도 더 빨리 카불을 점령한 결과 새로 내각과 정부를 구성하는데 제대로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소련군을 무찌른 무자헤딘 명장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이 등장하여 이들과 대적하면서 이후 집권 명분의 일정 부분 이상 상실한 것이다. 만약에 탈레반이 판지시르에서 학살을 벌이고 아흐마드 마수드와 암룰라 살레를 사살, 처형할 경우 카불 무혈 점령을 통해 얻은 긍정적인 이미지나 명분도 날아간다. 아무것도 없이 사실상 반서구주의 명분만으로 전쟁을 벌인 탈레반 입장에서는 명분을 잃는 것이 큰 손실일 수밖에 없다. 더 군다가 미군과 영국군이 자국민의 안전한 철수를 담보로 더 이상 현지 반 탈레반 저항 세력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만큼 탈레반은 판지시르의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에 대한 지하드를 선포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국민저항전선의 총사령관인 아흐마드 마수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가 2번째로 큰 민족인 타지크인으로 그의 아버지는 타지크인들 아니 아프가니스탄 전체의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만약에 탈레반이 아흐마드 마수드를 처단하고 격하할 경우, 아편 재배 문제로 이리저리 계산기를 두들겨본 후 탈레반에 합류했던 타지크인 군벌들도 불만을 품을 것이 뻔하며, 혹여나 진압 과정에서 탈레반과 국민 저항 전선 사이에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다시 말해서 아프간의 험악한 지형으로 인한 어려움은 새로 합법적인 집권 세력으로 오르려는 탈레반한테도 적용된다.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실세인 타지크인들이 탈레반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을 경우 아프가니스탄 중부와 북부의 여러 튀르크계 소수민족 및 시아파들도 탈레반에 대한 신뢰를 잃고 협조를 거부하게 된다. 탈레반 입장에서는 국민 저항 전선의 다당제 민주주의 요구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이를 무시하고 아흐마드 마수드를 처단한 뒤 사실상 반쪽짜리 정부를 운용하는 길, 이렇게 2가지 갈림길에 섰다.

21년 9월 중순 기준 일단 탈레반은 판지시르를 점거하고 초토화시키면서 저항의 기세를 꺽는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국민 저항 전선이 지속적인 빨치산 투쟁에 나설 것임을 표명해 온전한 승리라고 보기에는 미묘하다. 거기에 탈레반 내부에서 엉망인 나라꼴로 인한 책임소재와 논공행상 문제가 대두되면서 내부대립이 발생하고 있다.

10월이 되면서 상황은 반전되어서 저항군의 계속되는 저항으로 탈레반은 판지시르에서 철수하여 10월 19일에 판지시르의 중심지인 바라자크가 다시 저항군에게 점령되어 탈레반의 저항군 토벌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고 뿐만 아니라 현재 판지시르를 중심으로 아프가니스탄 각 지역에서 저항 활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